“펀딩 오픈했는데, 이제 특허 돼요?”
제가 상담에서 가장 안타까울 때가 이 질문을 받을 때예요. 열심히 만든 제품을 크라우드펀딩에 올리고, 반응이 좋아서 이제 특허도 챙기려 오셨는데, 이미 공개가 된 뒤라 선택지가 크게 줄어 있는 경우예요. 특허에는 순서가 있어요. 그 순서 하나를 놓치면 좋은 기술도 권리로 만들기 어려워져요. 오늘은 왜 그런지, 이미 공개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짚어볼게요.
공개하면 왜 문제가 되나요
특허는 “아직 세상에 없던 것”에 주는 권리예요. 그런데 내가 먼저 세상에 알려버리면, 그 시점부터는 “이미 알려진 것”이 돼요. 심사에서 내 발명과 똑같은 자료로 쓰일 수 있는 거예요. 남이 공개한 것뿐 아니라 내가 공개한 것도 마찬가지라는 점이 함정이에요. “내 거니까 괜찮겠지”가 통하지 않아요.
왜 이렇게 엄격할까요? 특허는 “세상에 새 기술을 알려준 대가로 일정 기간 독점권을 주는” 제도예요. 그런데 이미 내가 세상에 다 알려버렸다면, 국가 입장에선 “새로 알려준 게 없는데 왜 독점권을 주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공개 전 출원’이 원칙인 거고, 이 원칙은 나라마다 정도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 공통이에요. 야박해 보여도 제도의 취지를 알면 이해가 돼요.
‘공개’의 범위가 생각보다 넓어요
대표님들이 “공개한 적 없는데요?” 하시다가, 하나씩 짚어보면 이미 공개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래가 다 공개로 볼 수 있는 것들이에요.
- 제품 판매 시작, 상세페이지 게시
- SNS·블로그에 기술이나 원리를 소개
- 박람회·전시회 출품, 시제품 시연
- 크라우드펀딩 페이지 오픈
- 논문·학회·세미나 발표
- 비밀유지 약속 없이 외부에 샘플·자료 전달
“우리끼리만 봤는데요”라고 하셔도, 불특정 다수가 알 수 있는 상태가 되면 공개로 봐요. 반대로 비밀유지 약속(NDA) 아래에서 특정인에게만 보여준 것은 공개로 보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외부에 뭔가 보여줄 때는 “이게 공개가 되나”를 한 번 짚고 가는 습관이 필요해요.
특히 요즘은 크라우드펀딩이나 SNS로 반응부터 확인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기도 모르게 먼저 공개해버리는 일이 잦아요. “시장 검증이 먼저”라는 생각 자체는 맞지만, 지킬 기술이 있는 제품이라면 그 검증이 곧 공개가 될 수 있다는 걸 함께 기억하셔야 해요. 검증과 보호, 둘 다 챙기려면 “출원은 걸어두고 공개는 그다음”이라는 순서를 지키면 돼요. 순서만 바꿔도 시장 검증과 특허를 동시에 살릴 수 있어요.
이미 공개했다면: 공지예외가 있어요
이미 알려버렸더라도 바로 포기하실 필요는 없어요. 공지예외(신규성 상실의 예외)라는 구제 제도가 있거든요. 본인이 공개한 경우, 정해진 기간 안에 절차를 갖춰 출원하면 그 공개를 없던 것처럼 봐줄 수 있어요.
그래도 공지예외에 기대면 안 되는 이유
공지예외는 안전망이지 만능열쇠가 아니에요. 몇 가지 위험이 있어요.
- 기간이 지나면 못 써요: 공개 후 시한이 있어서, 늦으면 구제받지 못해요.
- 나라마다 달라요: 해외 출원을 생각한다면, 그 나라에는 이 예외가 없거나 조건이 다를 수 있어요.
- 내가 공개한 것만: 그사이 남이 같은 걸 공개하거나 출원하면, 그건 구제 대상이 아니에요.
- 증빙이 필요해요: 언제, 어디에, 무엇을 공개했는지 자료로 밝혀야 해서 실무가 번거로워요.
그래서 공지예외를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안전망”으로만 설명드려요. 처음부터 여기 기대고 공개하는 건 권하지 않아요.
실제로 이런 상담을 받은 적이 있어요. 한 대표님이 크라우드펀딩으로 반응을 확인한 뒤, 국내는 공지예외로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오셨어요. 문제는 미국 진출 계획이었어요. 그 나라 기준으로는 이미 공개 이력이 걸림돌이 될 수 있어서, 국내와 해외의 경우가 갈렸거든요. “국내는 어떻게든 되는데 해외는 어렵다”는 답을 드릴 때가 제일 안타까워요. 조금만 순서를 바꿔 펀딩 전에 출원했다면 양쪽 다 열려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 언제 출원하면 되나요
“그럼 완전히 완성될 때까지 기다렸다 출원해야 하나요?”라고 물으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특허는 실물이 아니라 설명으로 내는 거라, 시제품이 없어도 핵심 원리와 구현 방법이 어느 정도 잡혔으면 출원할 수 있어요. 오히려 “더 다듬고 나서”라며 미루다가 그사이 공개해버리는 경우가 더 위험해요.
그래서 실무에선 “공개 일정이 잡히는 순간”이 곧 “출원을 준비할 순간”이에요. 박람회 참가가 확정됐다, 펀딩 오픈일이 정해졌다, 데모데이 발표가 잡혔다. 이런 일정이 보이면 그 앞에 출원을 끼워 넣는 거예요. 완성도를 100% 채우려다 시한을 놓치기보다, 지금 설명할 수 있는 만큼으로 날짜부터 확보하는 편이 안전할 때가 많아요.
가장 안전한 건 순서: 공개 전에 출원
결국 제일 확실한 방법은 알리기 전에 출원해두는 것이에요. 출원 날짜만 확보되면 그 뒤에 마음껏 홍보하고 전시하고 펀딩을 열 수 있어요. 그래서 브랜드 대표님들께 출시 일정표에서 ‘출원 확인’ 칸을 공개보다 반 발짝 앞에 두시라고 권해요. 마케팅보다 특허 확인이 먼저 오는 순서, 그 하나가 핵심이에요.
그럼 투자자·파트너에겐 어떻게 보여주죠?
“공개가 그렇게 위험하면, 투자자한테 설명하는 것도 안 되나요?”라고 걱정하시는데, 그렇진 않아요. 앞서 말했듯 비밀유지 약속(NDA) 아래 특정인에게만 보여주는 건 공개로 보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투자자·잠재 파트너에게 기술을 설명할 때는 비밀유지 약속을 먼저 받고 이야기하는 게 안전해요.
반대로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자리는 조심해야 해요. 공개 데모데이 발표, 유튜브 소개, 보도자료, 오픈된 상세페이지 같은 것들이요. 같은 “설명”이라도 누가 들을 수 있느냐에 따라 공개인지 아닌지가 갈려요. 그래서 “일대일로, 약속 아래”와 “다수에게, 열린 자리”를 구분해서 생각하시라고 말씀드려요. 전자는 대개 괜찮고, 후자는 출원을 먼저 챙긴 뒤가 안전해요.
이미 공개했다면 지금 할 일
공개하셨더라도 다음을 서둘러 정리하시면 길이 있을 수 있어요.
- 언제·어디에·무엇을 공개했는지 날짜와 자료를 모아요.
- 그 공개가 “나의 공개”인지 확인해요(남의 공개는 구제가 어려워요).
- 해외 출원 계획이 있는지 정리해요(나라별 차이 때문에 특히 급해요).
- 남은 기간 안에 출원이 가능한지 변리사와 바로 확인해요.
- 추가 공개(2차 펀딩·후속 발표)는 정리가 끝날 때까지 잠시 멈춰요.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지가 줄어드는 게 이 문제의 특징이에요. 공개하셨다면 “늦었나?”를 고민하기보다 빨리 확인해보시는 게 손해를 줄이는 길이에요.
덧붙여, 팀이 커질수록 이 실수가 더 자주 생겨요. 대표는 조심해도, 마케터가 홍보를 서두르거나 개발자가 기술 블로그에 상세히 올려버리는 식이죠.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게 공개에 해당한다”는 걸 몰라서 그래요. 그래서 지킬 기술이 있는 회사라면 팀 안에서 “외부에 새 기술을 알리기 전엔 한 번 확인”이라는 간단한 규칙을 공유해두시라고 말씀드려요. 규칙 한 줄이 값진 기술을 지켜줄 때가 많거든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강조할게요.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공개 전에 출원”이에요. 특허가 될 만한 기술이 있는데 마케팅이 먼저 나가버리면, 좋은 기술을 눈앞에서 놓치게 돼요. 반대로 순서만 지키면 홍보도 전시도 펀딩도 마음껏 할 수 있고요. 지킬 게 있는지 헷갈린다면, 공개 일정을 잡기 전에 30초라도 “이거 특허감인가?”를 먼저 물어보세요. 그 습관 하나가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막아줘요.
참고: 신규성 상실의 예외 제도는 특허청 안내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기간·요건과 해외 적용 여부는 사안별로 달라 변리사 검토가 필요해요.
※ 이 글은 일반적인 제도 안내예요. 공지예외의 기간·요건·인정 범위는 사안과 국가에 따라 달라지고, 구제나 등록을 보장하지 않아요. 공개 이력이 있다면 반드시 변리사 검토를 거쳐 대응을 결정하세요.




